'기울어진 스크린'의 저자 차미경. ⓒ차미경'기울어진 스크린'의 저자 차미경. ⓒ차미경

'기울어진 스크린'의 저자 차미경은 방송작가, 리포터, 칼럼니스트로 활약해 온 열정적인 대중 문화 감시자이다. 저자는 장애인 당사자의 눈으로 본 대중문화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꾸어 가야 할지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기울어진 스크린'이 장애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장애라는 필터를 통해 대중문화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지난 2022년 발간된 후 북토크에 초대받고, 강연 요청도 이어진다.

하얀 피부에 다소 도도함이 감도는 외모 때문일까? 차미경의 개인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본지에서 차미경을 자세히 소개한다.

장애와 질병 사이

차미경은 1969년에 맏이로 태어났다. 3세때 소아마비에 걸려 보조기를 착용하고 목발을 사용하면서 어렵게 학교생활을 하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그녀는 집을 떠나 광주광역시에서 1년 동안 복지시설 입주자원봉사 교사로 현장 경험을 하였다. 장애인시설과 보육시설에서 각각 6개월씩 일하게 되어 근무 의무사항인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온몸에 미열이 있다고 하였다.

의사는 아무래도 류마티스가 의심된다고 했지만 차미경은 흘려들었다. 몸의 이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설마 했다. 목발을 짚고 걸으니까 항상 어깨와 무릎이 아팠는데 그것이 류마티스로 인한 통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광주로 가서 열심히 일하며 한 가지씩 배워가고 있는데 열이 나고 기침을 하는 감기에 자주 걸려서 계속 약을 먹었다. 계단밖에 없는 옛날 시설이라 하루에도 수십 번 계단을 오르내리느라고 몸에 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온몸에 커다란 대못을 박아 놓은 것처럼 움직여지질 않았다. 누군가를 불러야 하는데 소리 지를 힘도 없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선생님들은 그녀가 오늘 좀 늦게 내려오려나 보다 생각했다. 뒤늦게 원장님이 오셔서 심하게 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집에 연락하여 아빠가 데릴러 왔다. 병원에 실려가서 받은 병명은 류마티스였다. 그 이후 차미경은 휠체어를 타야 했다. 그때가 스물여덟 살이었다.

걷지 못하게 된 것보다 순간순간 갑자기 느닷없이 닥치는 통증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운전을 하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산책을 나갔다가 갑자기 못 움직이는 경우가 생기면 남동생이 달려와 데리고 갔다.

류마티스는 면역 질환이라 면역 억제제를 먹는데 그 약이 항암 치료에 사용하는 것이라 머리도 빠지고 메스꺼움 때문에 물도 마시기 힘들었다. 요즘은 자기한테 맞는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여 그런 증상은 없어졌지만 그 약을 찾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아프다 보니 갑자기 입원을 해서 하던 일을 마무리짓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즉 트라우마가 생겼다.

방송작가 되기

방송대상시상식에서. ⓒ차미경방송대상시상식에서. ⓒ차미경

차미경은 드라마를 좋아했다. 할머니가 드라마만 보셔서 할머니를 따라 드라마를 보다가 좋아졌다.

그녀가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드라마는 <임금님의 첫사랑>이었다.  할머니는 드라마가 끝나면 꼭 평가를 하고 다음에 전개될 내용을 예측하시곤 하였다. 

차미경은 할머니의 그런 드라마 평가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아빠와 엄마가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덤덤한데 아빠는 눈물을 흘리시곤 했다. 아빠 역시 할머니를 닮으신 듯하다.

주찬옥이라는 작가가 등장하면서부터 드라마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굉장히 세련되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전혀 정보가 없었다.

그녀가 류마티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새벽에 심정지가 와서 유언 한마디 없이 떠나셨다.

아빠는 차미경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면 언제나 나타나서 딸을 업고 구출해 주시던 든든한 구원자였다. 딸 걱정만 하다가 돌아가셔서 그녀는 너무 안타까웠다.

아빠가 안 계시니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 깊이 숨겨 두었던 방송작가의 꿈을 다시 펼쳐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속 방송작가교육원의 드라마작가 교육과정 수업을 수강하기로 결심하였다.  수강료가 대학 등록금 수준이었지만 엄마는 아빠 장례를 치르며 들어온 조의금을 내주시며 원하는 공부를 해보라고 하셨다. 아빠가 원하실 거라고.

내일은 푸른하늘 제작진과 함께. ⓒ차미경내일은 푸른하늘 제작진과 함께. ⓒ차미경

드라마작가 교육과정도 학교처럼 면접을 보았다. 신청자가 많아 합격을 장담할 수 없어 면접 준비를 열심히 했다. 면접실에 들어가니 '전원일기' 작가 김정수 선생님이 면접관으로 계셔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편한 마음으로 질문에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교육원은 여의도 금산빌딩에 있었는데 입구에 계단이 7~8개 있었다. 운전을 하고 건물까지는 쉽게 가지만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가기란 너무도 힘들었다. 게다가 장애인 화장실이 없어 소변을 보지 못하는 고통이 뒤따랐다. 수업을 마치고 움직이려면 다리가 너무 아파서 신음 소리가 절로 났다.

하지만 그때 했던 공부가 방송원고를 쓰고, 방송을 직접 하고, 취재를 통해 인물기사를 쓰고, 평론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Q. 방송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은

방송을 하면서 다른 장애인분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너무나 다양한 장애와 그 다양한 삶을 사셨던 분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하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이분들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마음이구나, 이렇게 살아 내시는구나, 이런 것들을 더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방송은 협업으로 하는 거라서 나를 드러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나를 안 드러내면서 같이 협업하는 과정들을 통해 남들을 배려하면서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Q. 대중문화 비평을 하려면 대중문화를 많이 접해야 할 텐데

저는 영화관에 혼자 가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보고 싶은 영화 목록을 적어 두었다가 제가 갈 수 있는 상영관을 찾아서 하루 온종일 상영관을 돌며 영화를 보는 날도 있어요. 요즘은 OTT도 많고, 영화도 많아서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지만 집에서 보면 중간중간 끊기도 하고 몰입도가 떨어져요. 그래서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편이에요. 제가 칼럼에 쓰는 영화들은 일부러 찾아본 영화라기보다는 그냥 봤는데 좋았던 영화예요. 그런 영화들이 훨씬 더 잘 써지는 것 같아요.

Q. 인천에서 대구까지 통학했다고

2017년,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장애인 관련 글도 쓰고,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활동도 하고, 장애인 인식개선 교재를 만드는 일에 참여도 하고, 이러면서 문득 내가 장애 당사자이지만 다양한 장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모르는 말을 했다가 누구에겐가 상처를 주게 되면 안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더 많이 알아야 될 것 같아서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대구대학교 대학원에 장애학 전공이 개설되어서 집이 있는 인천에서 대구까지 통학을 했어요. 그 당시 제가 가장 멀리서 다니는 학생이었지요.

Q. 어떻게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지

'기울어진 스크린'은 ‘에이블뉴스’에 연재했던 글, 웹진 ‘이음’이나 다른 매체에 썼던 글들이예요. 원래는 어떤 분이랑 책을 쓰기로 하고 출판 기획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좀더 고민을 해 보겠다고 하고 헤어졌었어요.

그런데 출판사 대표님이 제 글을 다 읽어 보신 거예요. 그러면서 책을 쓰기 전에 있는 원고로 책을 먼저 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책이 출간되었어요.

내가 가진 ‘장애’라는 정체성은 다양한 대중문화에서도 다른 것을 보게 한다.

왜들 장애인의 삶에서 꿈과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안달들인가?

장애인은 맨날 희망을 노래하고 꿈을 그리고 써야 하나?

“아, 저들은 저렇게 사는데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값싼 자기 위안과 가짜 희망을 주자고 우리와 그들로 구분 지으며 장애인을 대상화해 얻는 감동 추구는 이제 그만하자.

대중문화가 장애를 보여 주는 방식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 '기울어진 스크린'에서 -

장애인식개선 강의 중. ⓒ차미경장애인식개선 강의 중. ⓒ차미경

Q. 좋아하는 일은 

제 주위에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여행을 따라가는 편이예요. 저는 동네 산책하 면서도 여행하는 느낌이예요. 맨날 보는 동네 산책길이지만 지겹지 않아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좋아하는 영화는 계속 반복해서 보는 스타일이죠.

휠체어로 여행을 하면 이동수단, 숙박시설, 음식점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재미있는 추억이 되잖아 요. 여행을 다녀오면 친구들이랑 얘깃거리가 많아져서 그만큼 많이 웃게 되더라구요.

저는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만드는 거예요. 엄마가 작년과 재작년에 많이 아프셨어요. 해마다 엄마가 묵은지로 만두를 해 주셨는데 편찮으셔서 만두를 못 만드시는 거예요. 2년 동안 만두를 안 먹으니까 너무 먹고 싶어서 내가 만들기로 했어요. 정말 힘들더라구요.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Q. 장애 때문에 가장 난감했던 일

22년 11월, 모임이 있었고 오래간만의 외출이라서 설레였어요. 그래서 머리도 예쁘게 하고 화장도 하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을 나섰어요. 아파트 후문 쪽으로 나가면 차도하고 인도가 만나는 길이 있어요. 그 길 끝에 덤프트럭이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차가 왜 여기 서 있지? 이 차가 가려는 건지 안 가려는 건지 뭐지? 계속 봤는데 안 가고 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차 앞을 지나가는데 차가 갑자기 출발을 한 거예요. 내가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기사님이 저를 못 보셨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었죠. 차가 저를 받았어요. 그 충격에 제가 훅 날아서 맞은편 횡단보도로 떨어졌어요. 시야 밖으로 제가 떨어지니까 그제야 기사님이 저를 보신 거죠.

운전하면서 자동차 사고는 몇 번 경험해 봤지만 휠체어에 타고 처음 당해 보는 사고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너무 당황스럽더라고요. 파손된 전동휠체어가 길 한복판에 있는데 제가 거기에 가서 앉을 수도 없고 난감했어요. 이럴 때는 도대체 누구를 불러야 되는 거지? 일단 경찰을 불렀어요.

경찰분들이 바로 오셨어요. 그런데 경찰분들에게도 이런 사고가 처음인 거예요. 119구급대도 왔는데 역시 처음이라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어요. 저는 그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이 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전동휠체어였어요. 내가 구급차에 실려가면 저 휠체어를 누가 뒤처리를 해 주지…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는 사람마다 ‘다친 데 없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그  때 내가 어디를 다쳤는지도 모르겠고, 어디가 아픈지도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저를 안아 올려 가지고 어디 앉힐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도로 바닥에 그냥 있었지요.

제가 상황을 정리했어요. 전동휠체어 업체 사장님한테 전화를 했죠. 고맙게도 사장님이 휠체어 리프트 차량으로 오셨어요. 사고 처리를 하고 망가진 전동휠체어를 차에 싣고, 저도 싣고 그 업체로 가서 전동휠체어 수리 맡기고 저는 거기에서 대여해 주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에 왔어요.

저희가 갈 수 있는 병원이 사실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교통사고 환자는 입원을 하는 게 가장 좋다고 하는데 병원 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서 그냥 통원 치료를 받았어요. 그랬더니 보상이 적더라구요. 병원에 편의시설이 없어서 입원을 못하는 거라고 해도 이해를 못해요. 게다가 휠체어는 내 몸인데 대물이라고 터무 니없는 가격을 매기는 거예요. 사고를 경험하면서 경찰서나 119구급대에 장애인 사고에 대한 서비스 매뉴얼이 있어야 하고, 병원도 장애인 환자의 경우는 대학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Q. 앞으로 쓰고 싶은 글

더인디고에 <차미경의 컬쳐토크>를 연재하고 있는데 앞으로 비장애인에게 장애를 이해할수 있게 하는 그런 책을 써 보고 싶어요. 대중문화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부분에서 접근할 수있을 듯해요.

글을 쓰다 보니까 고인 물을 많이 퍼낸 거 아닌가 싶어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차미경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 전공

더인디고 편집위원

2007 전국 공동체 라디오어워드 프로그램 대상

한국방송작가교육원 드라마작가 부문 수료 장애인방송아카데미 1, 2기 작가반 수료 마포 FM <함께 쓰는 희망노트> PD, 작가, 엔지니어 Jnet-TV <보고 싶은 사람>, <나를 외쳐봐>, <Jnet갤러리>, <뉴스플러스> 작가 KBS-3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 리포터, 작가 더인디고 <차미경의 컬쳐토크> 연재 

2022년 '기울어진 스크린'출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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