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한달살기의 최대 난관이었던 장애인 렌터카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나는 더욱 바빠졌다. 렌터카가 안되던 한 5일 동안은 게하 사장님께서 아이들 등하교를 해주셔서 오히려 몸이 편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리고 하교 후에 애들을 데리고 무조건 어디든 가야한다는 부담감으로 매일 고민을 하며, 더 바쁘고 힘들었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서 아이들 아침 먹일 준비를 한다. 시차가 1시간 빨라서 한국 시간 5시30분이다. 처음 와서 한동안 나도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더 일어나기 힘들어 하는 애들을 깨우고 나도 대충 준비를 한다.

아침 일찍 등교 준비로 바빴던 사이판 일상. ⓒ 박혜정아침 일찍 등교 준비로 바빴던 사이판 일상. ⓒ 박혜정

애들을 학교에 태워주고 나면, 마트를 가거나 아이들 하교 후 데리고 갈 곳을 탐색한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갈 곳 정보를 찾는 일은 매일의 고민거리였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설거지, 청소, 정리를 한다. 그리고 나는 샤워하고, 신변처리, 화상치료 하는 것만 해도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다 하고 나서 어영부영 하다보면, 벌써 애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싱크대가 높고 좁아서 불편하다 보니 애들 밥 한끼 챙겨먹이는 것도 힘들었다. 샤워나 신변처리도 익숙한 집이 아닌, 공간도 좁고 트랜스퍼 방향도 다른, 낯선 곳에서 하려니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손에 닿지 않는 부분도 많고, 양치도 매달려서, 설거지도 매달려서 했다.

높이가 모두 너무 높아서 힘들었던 사이판 한 달 살기 숙소 모습. ⓒ 박혜정높이가 모두 너무 높아서 힘들었던 사이판 한 달 살기 숙소 모습. ⓒ 박혜정

투어나 관광지에 휠체어는 아예 갈 수 없는 곳도 많아서 마음을 비워야 했다. 이곳 사이판이 생각보다 휠체어 접근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혜에게 멋지게 사진만이라도 찍어 오라하고 거의 주차장이나 입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여행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 한달살기는 주목적이 현혜 스쿨링이었기에 더욱 마음을 비웠다.​

솔직히 제주도 한달살기나 지금까지 했던 어떤 여행보다 더 힘든 기분이었다. 처음에 렌터카 때문에 너무 신경쓰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가 몸과 마음이 금방 지치는 것 같았다.​

사이판 한 달 살기 초반, 너무 너무 지쳤던 날. ⓒ 박혜정사이판 한 달 살기 초반, 너무 너무 지쳤던 날. ⓒ 박혜정

그리고 이상하게 뭔가 자꾸 허탕치는 게 많았다. 화장실에 들어간 첫째 현이가 문이 고장나서 갇히는 어이없는 상황도 있었다. 생전 깨뜨릴 일 없는 화장품이 와장창 깨지기도 했다. 마트 배달을 시켰더니 갔다주는 사람이 문 앞에 놓으면서 유리로 된 주스병을 깨뜨려서 엉망이 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겼다. 게다가 한 4년 동안은 감기에도 걸리지 않았던 현혜가 여기 와서 둘이 동시에 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참나~​

나는 왼쪽 팔꿈치를 삐끗해서 뭘 들고 휠을 미는 것조차 힘들었다. 사이판에서 개인적인 인간관계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온몸이 아프기도 했다. 휠체어 타고 여행? 안 힘들다면 정말 거짓말이다.

솔직히!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돈이 많아서 호캉스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대부분 했던 배낭여행이나 현지 살기 여행은 사서 하는 고생이 분명하다. 특히 이번 여행이 진짜 힘들게 느껴졌다.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다. ⓒ 박혜정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다. ⓒ 박혜정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여행을 가는 이유가 뭘까? 되도 안한 외국물을 먹어서? 외쿡에 있다는 우쭐함?​

아니다. 오로지 내가 경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힘든 상황을 겪고 난 다음, 집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휠체어 여행의 이유’는, 철저히 낯선 곳에서 생기는 돌발 상황을 긍정적으로 문제 해결하는 능력을 여행에서 배울 수 있었다는 거다. 또, 깨지고 부딪히고 실패를 하더라도 그런 경험들로 인해서 내 삶이 확실히 한층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

사이판에 있는 동안 진짜 힘들어서 다시는 여행을 못하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이 시간이 앞으로 내 인생의 밑거름이 되고, 또다른 시련을 극복할 용기와 힘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힘든 시간이 많은 여행일수록 더욱 그랬기에... 그러니까 이렇게 힘들지라도 다시 일어나서 여행을 즐기고 느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혜가 3, 4살 때 처음 갔던 말레이시아, 대만 가오슝, 베트남 다낭 가족여행. ⓒ 박혜정현혜가 3, 4살 때 처음 갔던 말레이시아, 대만 가오슝, 베트남 다낭 가족여행. ⓒ 박혜정

또, 무엇보다 이제는 우리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하면서 이유가 더 확실해졌다. 우리 딸들, 현혜는 아직도 서너 살에 처음 가족여행을 갔던 말레이시아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얘기한다. 그 뒤에 여행들은 말할 것도 없이, 수많았던 행복의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만의 행복한 기억과 추억을 만들 수 있고, 여행을 통해 우리 가족만의 우애, 서로 사랑하는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고 느낀다는 것은 정말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절대 포기할 수 없고, 돈의 가치와도 절대 바꿀 수 없다. 지금이 아니면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불편한 내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사랑이 듬뿍 담긴 행복한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현혜가 어릴 때 했던 미국, 도미니카 공화국, 필리핀 세부 가족 여행. ⓒ 박혜정현혜가 어릴 때 했던 미국, 도미니카 공화국, 필리핀 세부 가족 여행. ⓒ 박혜정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건, 낯선 곳으로 여행을 와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불평, 불만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행을 오면 당신이 익숙한 환경이 절대 될 수 없다. 누구나 이 사실은 알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황,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철저히 낯선 상황이 힘들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힘듦을 불평, 불만하기 시작하면 여행을 더이상 할 수 없다. 아니, 여행을 아예 오지 말았어야 했고, 여행을 할 필요가 없는 거다.​

그 불편을 불평, 불만으로 망쳐놓지 않는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힘듦을 기쁨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값진 시간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이판에서 자주 본 무지개 덕분에, 힘들어도 행복한 여행을 계속 하겠다고 다짐했다. ⓒ 박혜정사이판에서 자주 본 무지개 덕분에, 힘들어도 행복한 여행을 계속 하겠다고 다짐했다. ⓒ 박혜정

내 집이 아닌 그 어떤 곳에 가든, 그곳이 한국이든 해외든,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 안에서 어떻게든 값진 경험으로 만들겠다 생각을 하시면 좋겠다. 그러면 그 어떤 곳이든 여행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여행을 하시려는 모든 분들께 여행이 진정으로 인생의 밑거름이 되고, 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란다.​

나에게 여행이 언제나 옳았고, 지금까지 나를 성장하고 성숙하게 한 여행의 대단한 힘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