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아침 7시에 오픈한다. 오픈시간에 맞춰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서 출근하려면 집에서 오전 6시 45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럼 오전 7시에 첫 번째 고객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담아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간다. 그리고 지하철역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한 번 환승한 뒤 오전 8시 8분이나 8시 18분 셔틀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 그날의 업무를 시작한다.
그런데 요즘은 회사에서 근로지원인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게 참 입에 잘 맞는다. 그래서 굳이 스타벅스 오픈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지하철역으로 출근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는 텀블러를 들고 걸을 필요도 없으니까 오히려 출근길이 편하다. 8월 14일 월요일 출근길도 그랬다.
그날은 출근 준비가 빨리 끝나서 6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스타벅스를 들르지 않고 바로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근로지원인이 내려주는 커피를 모닝커피로 마시며 일할 생각하며 분주히 걸었다. 지하철역에 7시 10분쯤 도착했는데(거의 30분은 걷는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인지 지하철을 타면서부터 빈자리를 발견했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탄 순간부터 앉아서 가긴 처음이다. 너무 편했다.
지하철역을 하나하나 잘 헤아리며 내렸고, 환승도 무사히 해서 회사 셔틀버스를 타는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딱 8시. 첫 셔틀버스 시간인 8시 8분까지 조금 여유가 있었다. 그날 스타벅스에 들르지 않아 내 손엔 텀블러가 없어서 목이 말랐다. 그래서 지하철역 안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옥수수보리차를 샀다. ‘물 먹는 하마’인 근로지원인에게도 주려고 하나 더 샀다.
그렇게 옥수수보리차를 백팩에 넣고 지하철역을 나와 셔틀버스를 타는 곳으로 갔는데, 셔틀버스가 벌써 와있었다. 버스를 탔다. 평소처럼 운전석에 앉아 있는 기사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버스 안으로 들어가며 빈자리를 찾았다. 자리에 앉으면서 무심코 버스 천장에 시선이 닿았는데, 살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버스 천장이 우리집에 있는 ‘달과 별’ 무드등처럼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 셔틀버스가 한 대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대기 때문에 난 셔틀버스가 한 대 새로 생겼겠지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리에 앉아서 옥수수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버스가 출발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8시 5분이다. 8분에 출발해야 하는데 빨리 출발하는 거다. 살짝 이상하긴 했는데, 이번에도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두 달 넘게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8시 8분과 18분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아니더라도 셔틀버스가 와 있거나 일찍 출발하고 다음 버스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셔틀버스는 내가 탔던 지하철역에서 출발한 뒤 다음 지하철역에서 사람들을 한 번 더 태우고 회사로 간다. 그런데 이날은 무정차로 그냥 가는 거였다. 내가 탔던 역에서 사람이 너무 많이 타는 바람에 버스에 자리가 없으면 다음 역에선 무정차로 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날은 빈 자리가 정말 많았다. 이상하긴 했지만 8시 5분에 출발했기 때문에 아직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무정차로 그냥 지나친 거라 생각했다.
문득 내가 앉은 창가로 햇빛이 눈부시게 들어와서 커튼으로 창가를 가렸다. 그리고 다시 옥수수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생각했다. 내일(8월 15일)은 쉬는 날이니까 오늘 하루 파이팅 하면서 잘 보내자고. 회사에서 다음 주에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그걸 위해 이날 오전과 오후에 회의가 잡혀 있다. 오늘 지하철을 타면서부터 앉아서 온 덕분에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이상하게’ 생각했던 순간보다 정말, 진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쯤이면 버스에 탄 사람들이 인도에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사님이 셔틀버스의 큰 몸체를 유연하게 회전시켜야 할 타이밍인데, 오히려 속력을 내면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커튼을 걷고 창밖을 보았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셔틀버스라고 생각했던 버스는 회사를 지나 고속도로 비슷한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다. 차가 많아서 회사가 있는 오른쪽으로 들어가지 못한 버스가 그냥 회사를 지나친 뒤 조금 더 가서 방향을 틀어 다시 회사로 들어가려고 그러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버스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엄청났고, 방향을 돌릴 수 있는 곳도 몇 번 그냥 지나쳤다.
비로소 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가 셔틀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를 탔다는 사실을, 오늘 오전 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 근로지원인이 내려주는 모닝커피를 마시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 어쩌면 내게 재난이 닥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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