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빗길을 가다가 사고가 난 현장(사고 당일 사진). ©대구소방안전본부 대구 달성군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빗길을 가다가 사고가 난 현장(사고 당일 사진). ©대구소방안전본부 

태풍 카눈으로 인해 희생자 두 명이 발생했다. 두 사람 모두 장애인이다. 오직 장애인만 희생된 것은 장애인이 재난 상황에서 취약계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인이 희생되도록 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이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의 안전에 대해 취약하고 무심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더구나 장애인의 희생을 개인적 안전사고로 치부해버린 것은 또 다른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비양심적 태도이고 일종의 범죄행위이다.

대구시 군위군의 희생자는 농사를 지으며 홀로 사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점점 청력을 잃어 이제는 대화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중도장애인이고 농촌생활을 하다 보니 장애인단체 가입은 꿈도 꾸지 못했고, 장애인단체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알지 못했다. 장애인등록만 겨우 했을 뿐이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가운데 깨 농사와 고추 농사를 짓는 농부로서는 쓰러진 식물을 돌보아야 했다. 태풍이 대구를 지나간다는 소식에 울산에 거주하는 여동생은 걱정이 되어 사고 당일인 10일 오전 10시경 열 차례 이상 통화를 했다.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권했다. 희생자는 식물이 모두 쓰러져 농사를 망치게 되니 밭에 나가봐야 한다고 했다. 여동생은 그럼 조심해서 일을 보라고 당부했다.

이웃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희생자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에 지인이 저수지 둑이 터질 우려가 있으니 대피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관계기관은 재난 대피 방송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절반이 이 방송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폭우로 문을 닫고 있어서 못 들었을 수도 있고, 마을에서 떨어진 밭에 있는 사람들은 빗소리 때문에 방송이 잘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설마 하지 않은 방송을 했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기관이라고 여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재난방송을 했다고 하여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재난방송은 듣고 대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방송을 듣지 못했다면 그 방송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주민들에게 일일이 문자로 강제퇴거명령을 해야 옳았다. 특히 청각장애인에게는 그랬어야 했다.

저수지 둑은 한 달 전 장마에도 터진 적이 있다. 이번 태풍에 다시 둑이 터졌으니 재난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것이다. 저수지 둑 관리가 부실하거나 홍수가 나면 전혀 안전을 담보하기 어려운 위험하고 부실한 시설물이었다. 둑이 한 번 터진 곳이면 태풍의 중심에 있는 대구로서는 위험 가능성을 고려하여 대피를 철저히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방송이나 정보전달이 아니라 취약자는 별도로 챙겨서 우선적으로 동반 대피를 해야 했다.

지인이 피해야 한다고 전화를 했으니 기관은 정보를 제공했고, 대피를 하지 않은 것은 본인의 과실이 아니냐고 말한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전화를 한 지인은 기관의 담당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상황이 정확하게 전달되었는지 확인이 안 되는 것이다.

청력이 약하여 소리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되지 않았음에도 ‘알았다’거나 ‘응’이라고 말한다. 못 알아듣는 사람 취급을 받지 않고 싶어서인지, 핵심 단어를 듣고 의미파악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응’이라고 답하면서 계속 다음 이야기에서 의미를 알아채려고 노력한다.

희생자는 둑이 터지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밭의 물관리를 하고 식물을 바로 세우면서 계속 둑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둑에 별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해 보고 싶어서 둑 가까이 가서 확인까지 해 보기도 했다. 둑에 문제가 없으니 계속 일을 해야겠다고 다시 밭으로 오는데 물이 더욱 많이 불어나서 이제는 다리가 거의 잠길 정도가 되었다. 급하게 대피를 해야 한다고 밭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둑이 갑자기 터지면서 희생자의 걸음걸이를 따라잡아 수마가 희생자를 덮치고 말았다.

핸드폰은 물에 잠겨 유실되어 증거를 찾을 수는 없지만, 멀리서 목격한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마을 사람 20여 명은 먼저 대피를 했다. 그때 재난 취약계층인 희생자를 데리고 갔다면 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멀리서 밭에서 나오는 광경을 본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면 수마가 덮치는 것을 보고 신고를 할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지하고 먼저 긴급 구조요청을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제방 공사에 문제가 있고 교통 통제를 하지 못해 일어난 세종시의 장마철 지하도의 희생자와 이번 사건은 너무나 흡사하다. 대피령을 듣고도 고집을 피우고 대피명령을 어긴 경우는 안전사고가 맞지만, 그 정보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통제가 부실하고 위험물의 관리가 부실하여 발생한 재난사고는 안전사고가 아니므로 분명 국가의 책임이 따라야 한다.

달성군 가창면의 휠체어 장애인 희생자의 경우를 보자.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매우 위험한 취약재난 지역에 대해 관계기관은 관리를 하지 못했고, 그러한 지역이나 시설물의 주의에 대해 희생자에게 통제나 교육,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산의 초입에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로 도랑으로 떨어지고, 길바닥 경사로 인해 수영장의 미끄럼틀처럼 물이 흘러내리는 도로는 장애인에게는 분명 취약지역이다. 그러한 지역에 장애인콜택시가 더 이상 갈 수 없다며 내려주었고, 장애인은 집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다. 차가 진입을 하지 못할 지경이면 재난관리 대상이 되어 대피 조치가 필요했다.

헌법 제29조에는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적 행위로 국민이 손해를 받은 경우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34조에는 장애인은 국가가 보호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도록 정하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에서는 재난관리를 국가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법 제22조에서는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 수립에 재난취약계층의 안전관리에 대한 대책을 포함하여 수립하도록 정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재난안전대책과 휠체어 장애인에 대한 재난대책이 부족하여 발생한 장애인 재난에 대하여 당연히 충족하는 법적 조치가 미진하므로 헌법에서 말한 불법행위로 인한 보상을 국가는 해야 하는 것이다.

동법 제31조2에서는 재난취약계층이 재난이나 안전사고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지원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지자체가 조례를 정하여 실시함에 있어 행안부장관은 지원과 감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과 같은 재난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조치가 충분하지 않거나 장애 특성을 고려하거나 장애인에게 위험한 시설물 개선에 노력이 부족하거나, 안전조치가 충분하지 못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다.

아직도 국가는 윤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정한 장애인의 생명과 안전권을 인정하고 준수하지 않고 개인의 안전사고나 장애로 인한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동등한 대우와 장애인의 안전문제는 후진국의 수준이다. 이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며, 철저한 재난대책으로 안전사고로 인한 장애인 희생자 외에는 아무런 희생이 없다고 말하는 정부는 치졸한 후진국형 정부이다.

이에 장애인단체는 도대체 무슨 기능을 하고 있는가? 세월호나 이태원 사건의 경우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와 협의하고 추모하고 보상을 위해 노력한 것에 비해 장애인은 단체가 아니면 누가 보호하고 대변해 줄 수 있을까?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고 오직 여동생과 통화를 하며 농사를 낙으로 살아가는 청각장애인, 변두리의 허름한 집에서 장교 아들을 훌륭히 키워냈지만 자신의 안전에는 아무런 힘도 없었고, 안전보장도 받지 못했고, 보상마저 받지 못하는 장애인 희생자를 누가 추모하고 기억하며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을까?

통닭집의 닭장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희생을 기다리는 생닭과 같은 장애인을 누가 취약계층이라고 이름만 붙여 주었단 말인가? 도대체 그렇게 많은 재난사고에 장애인이 더욱 큰 피해와 희생을 당하고 있음에도 귀 닫고 눈 감고 있는 이 비열한 사회에 무엇을 믿고 내일을 꿈 꾸고 살아야 하는가?

재난안전 시설도 없고, 대책도 없고, 정보도 차단되고,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는 장애인은 허울 좋은 안전에서 완전배제되어 이 사회에서 밀려나야 하는 신세가 되어 있다. 비열한 사회와 치졸한 공무원은 안전사고라고 하면 마음의 위로라도 되고 면죄부라도 받은 기분이 들까?

스스로 권익 옹호를 한다는 단체는 어디 있는가? 생존자 장애인을 위해서라도 장애인이 국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추모와 보상대책에 장애인단체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안전은 어디에 있느냐고 외쳐야 한다. 소방청이 제공하는 형식적 훈련과 실용적이지 못한 매뉴얼 한 권에 만족하지 말고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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