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하 작가. ©김현하김현하 작가. ©김현하

중국 유학길에 오르며

1973년에 목포에서 위로 아들 둘이 있는 집 막내딸로 태어났다. 세 살때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이라서 도전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삼수를 하다가 우연히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이 주얼리 디자이너였는데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자신도 주얼리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보석 디자인 공부를 하고 주얼리 디자인 회사에 들어갔다. 

직원으로 1년 정도 일하다가 프리랜서로 7년 동안 주얼리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아갔다. 꼬박꼬박 보수가 나오니 생활은 안정이 됐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 먹고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동양화 전시회에 가게 되었는데 동양화의 수묵 느낌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 전시회 작가가 교수로 있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 그때가 31세였다.

한국을 떠나 전혀 연고가 없는 곳에서 도전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었지만 그녀는 부딪혀서 해결해 나가자는 신념으로 주저하지 않았다. 중국에 가니 바이러스 전염병 사스 때문에 학교가 휴강이라서 중국 TV를 보며 혼자서 중국어 공부를 했다.

중앙미술학원 학부에서는 수묵인물화를 공부하고, 석사에서 재료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박사는 북경사범대학교에서 미디어아트를 전공하였다. 그녀의 작품이 독특한 것은 이렇게 동양화에서 시작하여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작업 모습. ©김현하작업 모습. ©김현하

작업에 대한 열정은 넘쳤고 열심히 했지만 작품 판매로 잘 이어지진 않았다. 생계에 대한 걱정이 작품에 대한 열정을 짓눌렀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신경쓰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주얼리 디자인을 해서 금속과 친숙했고, 그래서 화폐 가운데 가장 작은 단위인 동전을 통해 작은 돈의 가치를 표현하고 싶었다. 작품의 콘셉트를 정한 다음 주제와 어울리는 국가의 동전을 찾아서 동전 안에 디자인을 담았다. 동양화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방향을 잡게 되어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종이가 아닌 비단에 그림을 그렸다.

‘왜 동전을 그려요?’라고 묻는 독자들에게 김현하 작가 노트 중 일부를 공개한다.

'동전을 모티브로 한 작업은 자본을 비판하기보다 작다고 느껴지는 가치도 소중할 수 있으며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느낄 수 없는 가치의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원천으로 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자본주의 경제에서 현대인들은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  ‘잘 산다’는 의미에는 물질의 풍요를 위한 목적 의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돈은 행복의 필수 조건인가? 돈이 많으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지금 당신과 내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고 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아내기를 노력한다면 우리는 더욱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리고 당신과 내가 행복해질 때 세상의 아름다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그녀는 2014년부터 ‘다른 시선’을 시작으로 중국에서 2번, 뉴욕에서 2번, 한국에서 3번 개인전을 열었다. <제2회 아시아 현대미술>(뉴욕), <Affordable Art Fair>(홍콩), <Crossing China-The New Art>(싱가포르), <세계의 수묵-국제수묵작품전>(중국)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러다 2016년 뉴욕 허드슨밸리현대미술센터(HVCCA)에 3개월간 입주작가로 가게 되었다.

북경도 집 렌탈 비용이 비싸서 미국으로 가면서 집을 빼고 선배 작업실에 짐과 작품을 맡겨 두었다. 미국의 현대미술계는 신세계였다.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고 특히 선입견이 없었다. 보수적인 중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한 자유였다.

김현하는 3개월 동안의 미국 뉴욕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마치고 중국으로 갔다. 그런데 선배도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어 할 수 없이 짐을 빼야 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15년 동안의 중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을 결심한다. 미국에서 많은 현대작품을 보며 느끼고 떠오른 프로젝트인 세계 100대 재벌시리즈를 안정적으로 작업하기 위해서이다. 그때가 2017년이었다.

귀국하여 그녀는 1년 동안 120점을 그렸다. 전시회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타이틀이 ‘행복의 조건’으로 세계 재벌들의 얼굴을 그 나라 동전에 담아낸 프로젝트였다. 이 작업은 ‘과연 돈이 많다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작업실이 있고 그동안 그린 모든 작품이 있는 보물창고인 남양주 집에 2020년 11월 화재가 났다. 저녁을 먹고 부모님과 잠시 산책을 나갔다 온 사이에 보일러 문제로 집이 다 타 버리는 엄청난 사고를 직면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렌탈 집에 살면서도 계속 잘 관리하고 한국에 올 때도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던 김현하 작가 30년 동안의 작품들이 전소되고 겨우 12점만 남는 인생 최대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낙담하지 않았다. 잠실창작스튜디오라는 작업실이 존재했기에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마음으로 한 작품 한 작품 그려 냈다. 그녀의 작업은 커다란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에게 창작은 숨을 쉬듯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김현하 작가는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에 2019년부터 3년 동안 입주작가로 참여하며 한국에서 장애와 예술인의 경계와 편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예술인 창작을 위해

장애예술인지원법 내용을 살펴보니 장애예술인 창작 관련해서 전시·공연 등에 지원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공공지원을 받아 전시를 해 왔고, 전시와 공연은 조금씩 활발하게 진행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온전히 창작을 위한 지원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쉬워 요. 중국은 예술가를 위한 지원이 잘되어 있습니다.

장애인 작가뿐만 아니라 비장애인 작가에 게도 전통적으로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해 주죠. 지자체별 지원법도 있어요. 공공에서 작가의 작품을 사 주는 경우도 우리나라에 비해 많아요. 작품 판매와 전시도 활발한 편이고 일반인도 집에 그림을 거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와 문화적 차이가 있어서 지원의 폭도 다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현하 작품1 ©김현하김현하 작품1 ©김현하

제가 이제까지 받았던 지원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저는 시각예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시를 주로 많이 합니다. 지원금을 받아서 제일 많이 나가는 비용이 갤러리 대관료나 재료비입니다.

솔직히 지원금의 반 이상이 갤러리 비용으로 나갑니다. 나머지 금액으로 예산을 맞추려면 굉장히 빠듯한데, 그 예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게 충격적입니다.

한국장애인 문화예술원에서 2인전 기획으로 800만 원 지원금을 받았는데, 반 이상의 금액이 갤러리 비용인 빠듯한 예산을 보며 전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어!’, ‘질이 중요하지 않아, 우리에겐 양이 중요하지!’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장애예술인의 예술성을 장애인으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에 따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원금 자체는 양보다는 질에 우선순위를 두어서 작가들이 예산 고민 없이 예술성 있는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지원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이러한 양적 지원에 치우친다면 창작지원에 공모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보다 더 현실적인 지원 정책이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또한 한시적인 전시, 공연을 위한 지원보다는0 창작 준비금, 예를 들어 예술인복지재단의 창작 준비금 같은 제도가 마련되면 지속적으로 작품을 할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이 조성되어 보다 더작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창작의 출발점을 같게 만들어야

우선,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출발점이 다릅니다. 공공 영역에서 장애예술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예술을 하고 싶어하는 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같은 출발점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이들이 새롭고 도전적인 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함께해 주는 게 공공의 역할이 아닐까요. 예술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고 영감을 받는 것은 똑같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지원한다는게 아니라, 예술의 공공 영역에서 그들의 출발점을 같게 만들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예술 작업에는 많은 변수가 있는데, 지원이 유연하지 못하면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 합니다. 최근 작품이 조명설치 작업이었어요. 조명 가격이 비싸서 이틀 정도는 임대하는 게 낫지만, 한 달 정도 전시할 경우는 구매하는 게 더 합리적이죠. 그런데 분명 작품 재료인데도 지원사업비로는 구매할 수 없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다른 예로, 저처럼 움직임이 불편한 작가에게는 자동으로 조작되는 편리한 이젤이꼭 필요한데 잠실창작스 튜디오에서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이젤을 공공지원 사업비로는 구입할수 없습니다. 예술가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수 있는 지원사업이 필요합니다.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창작지원과 전시지원으로 나눠서 지원 합니다. 작품을 만들 수있는 창작지원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작가들에게 필요한 지원입니다.

생활을 유지하면서 창작작업을 할 수 없으면 전시 기회도 잡지 못하니까요. 창작 과정에서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든 지원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쉽습니다.

배우나 연주자는 공연할 때 개런티를 받는데, 미술작가는 전시를 한다고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개인전을 해도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미술작가는 노동력에 비해 보상받을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작품을 팔아야 그나마 보상이 되는데 그런 경우도 적고, 작품을 팔아도 재료를 살 수 있는 정도이죠.

유럽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아티스트 피(Artist Fee)를 지원합니다. 갤러리에서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 모으면, 국가는 갤러리를 지원해 주고, 갤러리는 작가에게 아티스트 피를 지급하는 식이죠. 잠실 창작스튜디오는 1년에 한 번씩 입주작가전을 하는데, 이때 작가들에게 아티스트 피를 지급합니다.

전시에 참가할 때마다 아티스트 피를 받는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작가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을 때 그것을 지원해 주면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림을 그리거든요.

우리나라 갤러리는 대부분 대관 중심으로 운영하고 기획전시를 잘 하지 않습니다. 갤러리를 중심으로 기획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공이 갤러리에 투자하고, 갤러리는 또 작가에게 투자하는 식으로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김현하 작품들. ©김현하김현하 작품들. ©김현하

김현하(金現下, Kim Hyunha)

설치미술가, 한국화가

2012~2015 Ph.D. 중국 북경사범대학교 중국 정부 장학생 예술학 박사 2007~2010 MFA 중국 북경중앙미술학원 중국화재료연구반 석사 2003~2007 BFA 중국 북경중앙미술학원 중국화수묵인물 학사

국제예술교류협회, 주중한인미술협회 회원 2019~2021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2016 Hudson Center for Contemporary Arts(미국 뉴욕)

2010 제4회 중국 북경 국제아트비엔날레 입선(중국국립미술관, 중국 북경) 2007 2007한국미술상 신진작가상(한국미술센터, 서울 인사동)

 

개인전

2022 <흔적-비껴간 시간과 그 후> 보안아트스페이스, 2021 <시대의 온도> 플레이스막 1, 2019 <다른 시선-행복의 조건> 갤러리밈, 서울 인사동 2017 <다른 시선-행복의 조건> SanDuBan갤러리, 중국 북경798예술특구 2016 <다른 시선> ART CENTO, 미국 뉴욕 2016 <다른 시선> CAFFE BENE 타임스퀘어, 미국 뉴욕 2014 <다른 시선> ART PARK 갤러리, 중국 북경798예술특구

체전

2023 知話之樂-CAFA기획전(슈페리어갤러리) 2022 한중수교 30주년기념 한중교류전(예송미술관), 길에서 묻고 표현하다-5인기획전(솔갤러리) I WANT(온수공간, 한국 연남동), 엔데믹, 업사이클(광명업사이클아트센터) 2021 무릉도원전(우현문갤러리, 한국 인천), 예락동주전(M갤러리, 한국 인사동) 2020 멋진 오빠 프로젝트4회-무해한 경계(올미아트스페이스), 굿모닝스튜디오기획전-비커밍(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2019 멋진 오빠 프로젝트3회-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라이프러리갤러리), 함께 꿈꾸는 세상-노회찬을 그리다(전태일 기념관), 종이충격전(양평군립미술관), 화이부동-베이징전(북경민족문화궁) 2018 소담한 선물전(혜화아트센터), 6회 재중한인미술협회전 한중미술교류전(주중한국문화원, 중국 북경) 2017 서울모던아트쇼(예술의전당) 2016 Crossing China-The New Art(MAD Museum, 싱가폴), 흑黑 그 숨 막힘(MIR Gallery), 제2회 아시아현대 미술 (MidHudson Heritage Center, 미국 뉴욕) 2015 Dialogue(99미술관 송장예술특구, 중국 북경), 경계와 선-2015수묵초청전(호남성화원미술관, 중국 호남성), Methods of Artists(Wanying Art Museum, 중국 허베이) 2014 세계의 수묵-국제수묵작품전(산수국화상업기지, 중국 선전시) 2013 한중수묵예술교류전(주중한국문화원, 중국 북경), Fusion / Fission 4인 국제교류전(Neuberg gallery, 중국 홍콩), Spoon Art Fair HK12(Grand Hyatt HongKong Neuberg gallery, 중국 홍콩 ) 2010 East Meets West(JaneSandelin Gallery, 미국 워싱턴D.C), Side View한일 여류작가 2인전(Thread gallery, 중국 북경 798예술특구) 2008 묵향-10인 국제교류전(주중 금산갤러리, 중국 북경환테에 예술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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