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경험하기는 쉽지 않다눈과 귀에 장애가 있어 정보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시청각장애인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그렇지만 지금까지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시도하고 도전하며 많은 경험을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2023년의 경험은 이전에 내가 해봤다는 경험들과는 정말 차원이 달랐다.

그렇기에 2023년을 되돌아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세 가지를 꼽아 정리했다.

1. 하늘날기

비행기는 몇 번 타본 적이 있지만 몸이 기체 안에 있기 때문에 하늘을 날면서 바람을 맞아’ 보지는 못한다그냥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온전히 몸으로 하늘날기는 번지점프였는데올해 번지점프가 아닌 다른 하늘날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실제로 하늘을 날았다그것도 두 번이나.

먼저 올해 초에 짚라인을 탔다이걸 타기 위해 차를 타고 정말 높은 산 꼭대기까지 오랜 시간을 올라갔다올라가서 촘촘하게 연결된 몇 번의 짚라인을 타고 다시 밑으로 내려오는 그 과정이 얼마나 스릴있고 시원했는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페러글라이딩을 타기 전 긴장된 모습으로 자세를 잡아보고 있는 모습. ©박관찬페러글라이딩을 타기 전 긴장된 모습으로 자세를 잡아보고 있는 모습. ©박관찬

사실 짚라인이라는 게 정확히 뭔지어떤 방식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봐도 글로는 충분히 어떤 건지 와닿지 않았고또 유튜브로 봐도 내 시력으로는 확실하게 이해되지 않았다결론적으로 충분한 마음의 준비없이 그냥 짚라인을 탔다어쩌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타는 그 긴장감과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여기(짚라인 타는 출발선)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으니 물러날 수 없는 상태에서 타고 내려오는 그 짜릿함이란!

두 번째는 페러글라이딩이다이건 요즘 뉴스에서 불시착하거나 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가끔 접한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하지만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짚라인처럼 혼자’ 하늘을 나는 걸로 알고 있었다교관이랑 같이 날게 되어서 안전하긴 했지만짚라인처럼 라인을 따라 이동하지 않고 낙하산으로 하늘을 나는 게 참 신기하고 공중에 떠 있는 기분도 생생하게 느꼈다.

올해 짚라인과 페러글라이딩을 해봤으니다음엔 정말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다.

2. 매직패스

내가 놀이기구를 타러 가본 건 고등학생 때 소풍이 마지막이다그래서 장애인 복지카드라는 걸 소지하고 놀이기구를 타러 간 건 올해 롯데월드가 처음이다솔직히 복지카드를 제시하고 놀이기구를 타는 기분은 그야말로 신세계’ 그 자체였다.

하나의 기구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특히 인기 있는 놀이기구는 줄은 어느 맛집의 웨이팅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청나다그런데 줄이 아무리 길더라도 기다리지 않고 내가 소지한 복지카드를 해당 놀이기구를 관리하는 직원에게 제시하면 다이렉트로 입장할 수 있었다.

놀이기구 중에는 한 번 탑승하기 위해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렇기에 자유이용권으로 입장하더라도 원하는 만큼 마음껏 놀이기구를 타기는 쉽지 않다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기라면 더욱 그렇다그런 시기와 사람들의 존재와 전혀 관계없이 복지카드만 소지하고 있으면 원하는 놀이기구를 바로 탈 수 있다는 매직패스를 몸소 체험했다.

그날 롯데월드에 있는 시간동안 거의 모든 놀이기구는 다 탔던 것 같다비장애인이라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3. 생애 첫 연주회

하늘을 날아보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2023년의 대미를 장식했던어쩌면 내 첼로 인생에서 전환점이든터닝 포인트든 어떤 상징적인 페이지가 될 생애 첫 연주회그 준비과정부터 연주회를 마무리하기까지의 여정이 참 파란만장했다첼로라는 악기가 내게 준 기억과 추억그리고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잘 열 수 있도록 함께해주신 첼로 선생님덕분에 정말 2023년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도 연주회 순간을 생각하면 꿈을 꾼 것 같다정장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단정하게 두른 뒤 첼로와 함께 무대로 걸어가던 느낌그리고 내게 호응해주기 위해 관객들이 불을 켜고 흔드는 응원봉을 볼 때의 감정연습했던 곡들을 하나하나 연주할 때의 긴장감과 더불어 편안했던 첼로의 진동까지.

지난 11월 24일 연주회에서 관객들에게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관찬지난 11월 24일 연주회에서 관객들에게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관찬

후회없는 시간이 되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해 임하며 준비해왔던 2023년이었던 것처럼, 2024년 내가 마주하게 될 순간들에도 그렇게 다가가고 싶다개인적으로 내 인생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이번 2023년을 계기로 전성기가 펼쳐지면 좋겠다.

안녕, 2023.

일년 동안 저의 글을 관심있게 읽어주신 에이블뉴스 독자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댓글도 달아주시고 연주회에도 관심 가져주시는 등 에이블뉴스 칼럼을 기고하며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이제 칼럼니스트 활동은 종료하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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