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 정부 예산안. ⓒ고용노동부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 사업 정부 예산안. ⓒ고용노동부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을 전액 삭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인지가 낮은 저인지 장애인 동료지원가 10여 명은 실직 위기에 놓였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지역점거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전원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지적·자폐성 장애인임을 인지했음에도 충분한 설명 없이 폭언과 폭언을 일삼았기에, 장애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장애인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은 비경제활동 또는 실업 상태에 있는 저인지 장애인이 ‘동료지원가’로 자조모임, 상담 등 동료지원 활동 제공으로 취업 의욕을 고취해 경제활동 상태로의 전이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다양한 제도 개선에도 연례적 집행 부진하고, 복지부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지원 내 동료상담과 유사 중복이라며 사업폐지를 결정했다고 고용노동부는 설명했다.

하지만 동료지원가들은 동료지원가와 동료상담은 이름만 비슷하지, 업무, 성격은 전혀 다르다며, 반박했다. 정부는 사업 폐지 이유 중 하나가 실적 부진이라고 설명했지만, 동료지원가들은 자신들은 떳떳하다며, 저인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일자리를 잃은 동료지원가에게 복지부 일자리나 민간 표준사업장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 했지만, 동료지원가들은 자신의 일자리는 복지가 아닌 노동이라고 반박하며, 동료지원가 일자리의 필요성을 역설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지적·자폐성 장애인 동료지원가 중 한 명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그는 장애인시설에서 25년 살다, 지역사회로 나와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의 동료지원가 활동을 해왔다. 이전엔 공장에서 일하며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껴졌지만, 동료지원가 일을 하면서 뿌듯하며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서, 이 사업이 절대 폐지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그는 국정감사 자리에서 전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의 우원식 의원은 고용노동부에 내년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 예산 삭감에 대해 올해 사업 실적이 78%라 실적도 떨어지는 게 아닌데, 왜 폐지하는지 고용노동부에 질문했다. 이에 동료상담과 관련해 유사한 사업이 보건복지부에 있다고 답했지만, 우 의원은 고용부의 동료지원가 사업은 지적·자폐성 장애인 참여 70%에 복지부 사업은 2%라 복지부 사업과 다르다고 지적하며, 이 사업 예산 삭감에 대해 질타했다.

국정감사를 하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을 살리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이 사업 폐지 입장을 굽힌 기색이 없었다. 이후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선 고용노동부는 이 사업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고용노동부와의 면담을 요구했고, 한 동료지원가는 전 직장에서 눈치 봤지만, 동료지원 일로 해방된 기분이라며, 고용노동부의 진정한 사과와 동료지원가 일자리 유지를 다시 한번 주장했다.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이 지난 10월 26일 오전 9시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 예산 복구를 촉구하고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이 지난 10월 26일 오전 9시 서울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 지원사업’ 예산 복구를 촉구하고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모습. ⓒ동료지원가 사업 폐지 대응 공동행동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적이 부진한 것도 아닌데, 실적 부진과 중복사업을 이유로 사업 폐지를 결정한 고용노동부의 결정에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와 관련해 사실 실적이라는 건 생산성과도 연결되는데 여기서 생산성이란 생산량과 그 생산량을 산출키 위해 투입된 노동량의 비로, 다양성 존중하는 어떤 개념도 들어있지 않고 순전 비장애 중심으로 설계된 개념이다. 여기서부터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수난은 시작된다.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에서 지적장애인은 지적 기능과 적응행동 상에 어려움이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자폐성 장애인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반복적인 행동을 특징으로 한다. 이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순전히 장애의 의료적 기준에 기반한 정의다. 의료적 개념만으로 봤을 때 이들은 능력이 제한된 사람들이다.

지적장애인에겐 알기 쉬운 자료나 설명(AAC가 필요할 수 있고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자폐인에겐 차분한 분위기 조성 또는 자폐 특성이 다양성으로 인정되는 문화 등의 합리적 변경(Reasonable Accommodation)을 제공한다면 의료적 관점에서 능력이 제한된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은 일할 수 있게 되고, 이들의 생산성은 담보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합리적 변경이 장애인 등의 권리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지적장애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과 반인권적인 직장문화 등에 적응하느라 고통을 겪고, 자폐성 장애인은 직장에 취업해 특성이 드러나면 배제되고 괴롭힘당하기 일쑤라 직장에서 생존하려고 장애 특성을 감추는 마스킹(Masking)을 하며 정신건강을 갉아먹는다. 이들의 다양성은 말살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생산성 증진은 어림없는 거고,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의료적 개념으로만 보면 능력이 제한된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열심히 일하면 설령 생산성이 낮더라도 이들의 노동에 따르는 대가는 정당하게 보상받는 게 마땅하다. 실제 열심히 일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적지 않지만, 다양성 무시되고, 비장애 중심으로 설계된 개념인 생산성과 실적에서 낮단 이유로 이들은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다.

실적, 생산성, 효과성, 효율성이란 명목하에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배제당하고 있고, 이렇게 능력주의를 통한 장애인차별은 공고하다. 이러하기에, 능력주의를 경계하면서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등 권리중심형 일자리를 주장하는 취지가 이해되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 일자리가 일반 노동시장(Open Labor Market)으로 전이될만한 일자리는 아니라는 것에 있다. 능력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일반노동시장으로 전이될만한 일자리는 과연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4년 전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기준 공공일자리 보장’,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님! 꼭 만나고 싶습니다’ 현수막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모습. ⓒ에이블뉴스DB4년 전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기준 공공일자리 보장’,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님! 꼭 만나고 싶습니다’ 현수막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모습. ⓒ에이블뉴스DB

더군다나 동료지원가에게 복지부 일자리나 민간 표준사업장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 고용노동부는 입장을 밝혔으나, 사실 이것도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겐 기만적이다. 복지부의 장애인 일자리는 장애인의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려는 성격이 짙고, 일반 노동시장의 경제적 수요를 배제했기에, 시장성 높은 일자리가 아니고, 그 노동시장으로 전이될만한 성격도 아닌 거다.

또한, 이 일자리와 관련돼 장애인 관련 합리적 변경 내용도 부재하다. 1년짜리 일자리가 적지 않고, 장애인 일자리와 관련된 기업들 등에선 장애인이 1년 이상 취업하면, 퇴직금 등의 비용부담으로 인해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장애인들을 11개월 일하게 하는 식의 편법 사례들이 상당하다는 말도 들었다. 장애인 일자리 중 복지일자리는 퇴직금 지급대상이 아니기도 하다.

고용부는 민간 표준사업장 일자리를 주겠다는 대책도 얘기했다. 그런데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의 경우 임금체계는 본사의 급여체계가 아닌 별도 급여체계라 최저임금으로의 장애인 고용 근거를 만들고, 장애인의 정규직 전환 같은 계획도 없다. 이 일자리는 장애인을 분리해 고용하는 거기에 통합고용과 일반노동시장으로의 전이를 추구하는 장애인권리협약에도 어긋나는 고용형태다.

이외에도 최저임금 적용제외가 적용돼 인간다운 삶은 애당초 꿈꾸지 못하는 시설과도 같은 분위기의 보호작업장으로 대표되는 보호고용도 있다. 그러니까 복지부 일자리든 민간표준사업장 일자리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임시 일자리에 불과하고 임금도 기껏해야 최저임금이 최대일 정도로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일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비장애 중심으로 설계된 생산성, 효율성, 효과성이란 개념 아래 이들은 장애인권리협약에서 금지하고 있는 보호고용의 대상으로 전락됐다. 이들의 일자리는 저임금에 단순노무직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실질적 통합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성 차단되는 것도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을 터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장애인들은 시설수용에 처할 위기가 상당한 것이다.

얼마 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제15회 장애인고용패널 학술대회가 끝나기 직전 좌장이 장애인은 생산성이 낮아 임금을 많이 주기 어렵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통합교육의 기회가 많아져 좋은 일자리로 가는 게 많아졌으면 하는 말도 했지만, 생산성이란 미명 아래 인간다운 삶은 애당초 누리기 어렵고 시설수용에 처할 위기가 상당한 장애인의 현실을 약간은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심지어 고인지·미등록 장애인의 고용차별 현실에 대해선 장애인 당사자가 발표한 거 외엔 아예 개념이나 관심조차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

지난 11월 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5회 장애인고용패널 학술대회’ 전경 중 일부. ⓒ이원무지난 11월 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5회 장애인고용패널 학술대회’ 전경 중 일부. ⓒ이원무

한편, 저출산으로 인해 현재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추세도 앞으로 계속될 터이고,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면 국내총생산이 감소하는 등 경제엔 악영향이다. 더군다나 다양성이 말살된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경제발전과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해 경제활동인구의 확충과 다양성 확보가 무엇보다 현재 필요한 시점이다. 

더구나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 게 장애인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생산적이지 않다고 고용에서 배제되었던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을 이제는 고용하기 위한 추세가 미미하지만 조금씩 나타나고 있고, 기업들도 ESG 경영방침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 기업과 경영계가 ESG를 환경 이슈만 있는 것 같이 믿는 추세가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 지속 가능한 사회와 경제발전의 일환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젠 고용에서 배제되었던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의 주류 사회로의 고용 활성화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고용 활성화가 된다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터이다. 그러기 위해 노동을 통한 장애인의 인간답고 존엄한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생산성 중심의 노동 개념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할 것이다.

장애 특성 등 다양성을 포함한 노동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시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도 사회적 차별과 다양성 등까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의 경우엔 장애 유형 중 사회적 차별이 상당하니 차별 가중치를 높게 두는 걸 통해 시급, 임금을 높이는 등의 발칙한 상상도 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청각, 시각 등 다른 장애 유형에서도 자신들도 차별을 많이 당하다고 반발할 것이 예상되긴 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생산성 중심의 노동 개념에서 탈피해 다양성을 존중하며, 능력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장애인이 일반 노동시장으로 전이하는 것 등을 통해 인간답고 존엄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대책이 만들어질 때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 장애인이 생산성 없는 존재란 차별과 편견은 불식되며, 장애인의 사회통합에 대한 작은 실마리가 보이게 될 거다.

그나저나 동료지원가 예산을 복원하라는 장애계 요구에 고용노동부가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길 바라며, 필자도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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